일제강점기였던 1945년 2월16일,  윤동주시인이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불과 여섯달 앞두고,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 서 시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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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윤동주시인

(1917.12.30~1945.2.16)

 

한국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지린 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9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은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 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간 후,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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